Just Kide

2014. 7. 8. 17:16novel/曉

2010/12/19 17:45

 바람은 성기게 불어와 머리칼을 흩트린다. 잠시간의 정적. 숨을 내쉴때마다, 내 떨림이 그에게 들킬까. 은연중에 빨라지는 호흡을 씹어 삼켰다.

*

 

쬐이는 햇살에 마지 못해 눈을 뜨니 시간을 가늠 할 수 조차 없을 만큼 중천에 해가 떠있다. 이런, 맙소사. 멍청한 소리를 내며 부엌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시간은 오후 열두시 반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아 씨발 좆됐다. 일어난지 오분도 되지 않아서 잘 돌아가지도 않는 댕한 머리를 붙잡고 협탁을 뒤져 너저분한 머리칼 부터 묶을 요량으로 머리끈을 찾아냈다. 이놈의 머리, 잘라야지 잘라야지 그렇게 다짐해 놓고도, 미루고 미뤘는데. 엉키다 못해 정말 부엌가위라도 들고 잘라내야 할 판으로 뒤성킨 머리칼을 보자니 머리를 안자르고 내버려뒀던 내 자신에게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아 내가 뭐하다가 늦잠을 잤지... 머리를 대충 묶어내고 바쁘게 침대 위를 벗어나는데, 아. 씨발. 이 새끼가 왜 여기있지. 분명 아무도 없어야 할 내 좁은 침대 위를 떡하니 절반 이상 차지하고 누운 이 새끼는 내가 아는 새끼가 맞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일단은 쌔까맣게 비어버린 머릿통을 굴려가며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제가 월급날이였고, 덕분에 나나 저 새끼나 기분이 누가 뒷통수를 쳐도 사람 좋게 웃을 만큼 좋았고, 그래서 월급탄김에 술이나 마시자고, 술집에 들렸던거 같고... 그리고 그 후에...

 

" 아, 이런... 씨이발..."

 

기억하고 싶지 않을 기억까지 생각이 닿자, 잠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다리를 들어 존나 세상 모르게 퍼질러 엎어져선 코까지 골고 있는 히단을 힘껏 걷어 찼다.

 

" 야 이 새끼야 안 일어나!? "

 

둔탁한 소리를 내며 침대 밖으로 곤두 박질 친 히단이 머리를 부여 잡으며 신음했고, 나는 내친김에 히단에게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 씨발, 매번 술 마실때 마다 따먹으면 좋냐 !! "

" 아 씨발... 따 먹을만 했으니 따 먹었겠지... "

 

난폭한 방법으로 잠을 깨운게 못 마땅 했던건지, 내 말을 귀신같이 알아 듣고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붙이는게, 아주 가관이 따로 없어서.

 

" 존나 비싸게 구네... "

 

그래도 이 새끼가. 방금 전까지 히단이 베고 있던 베개를 힘껏 집어 던지니 짧은 신음과 함께 반쯤 일으킨 몸이 다시 방바닥으로 엎어진다. 자지말고 일어나, 새끼야. 지금 존나 늦었어. 짜증 스러운 말투로 히스테리를 부리자, 같잖게 한숨을 내쉬고 한동안 미동이 없다가, 하는 말이.

 

" 병신아. "

 

어쭈.

 

" 누가 누구 더러 병신이...ㄹ "

" 오늘 일요일이거든, 씨발.... 좀 .... 자자 제발... "

 

 댕, 하니 머리 뭔가 와 부딪히는 느낌뒤로 드는 좆같은 기분. 설마. 하고 고개를 획 돌려 협탁 위에 올려진 핸드폰을 급하게 열어보니. 선명하게 찍힌 (일) 이란 글자가 이토록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던가. 아 씨발 이게 무슨 쪽이야. 괜히 멋쩍어서 아. 맞네. 바보 도트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히단이 잠이나 마저 처 자라. 하며 던진 베개가 정확히 얼굴에 들어 맞는다. 씨발놈.

 

*

 

잠을 그렇게 허무하게 깨자 더 이상 잠을 잘 수 가 없어서 못내 뒤척이다 결국 다시 일어나 앉았다. 맨 바닥에서 잠이 오긴 하는지, 히단은 코라도 골 기세로 골아 떨어져 있었고, 저 새끼는 언제 집에가? 못마땅한 물음만 입속을 멤돈다. 집에 놀러와서 식량만 축내가는 새끼. 그러고 보니 현관문 열쇠도 복사해서 넘겨줬었구나. 자폭했네 나, 응. 심심해선지, 집안이 익숙치 않게 조용해서인지, 계속 혼잣말을 내뱉다가, 결국엔.

 

" 야, 일어나봐 "

 

대강 침대 밑으로 발을 뻗어 히단의 배때기에 대고 발을 흔들어 대자 귀찮다는 듯이 나른하게 눈을 뜨곤 왜 또... 잔뜩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다. 장 보러가자. 싫어. 나름 심사숙고해서 한 말인데, 이 새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딱 잘라 말하고 반대편으로 몸을 뒤척인다. 개새끼 진짜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 너 혼자가. 왜 자는 사람 깨워서 갈려고 그러냐... "

" 혼자가면 심심하잖아, 응. "

" ... 웃기고 있네, 갈굴 새끼가 필요한거겠지... "

 

귀신같은 새끼. 

 

에이씨.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널부러진 후드집업을 발가락으로 꿈질거리며 주어올리고, 창문을 열어 날씨를 가늠했다. 별로 안춥네. 아직은 초가을이라 낮엔 여름 못지않게 더워서 그냥 입고있던 런닝 위에 껴입고 빨래통을 뒤져 그나마 입을 만한 스키니를 찾았다. 아직 냄새는 안나네. 대충 탈탈 털어 바지에 다리를 꿰는데. 드러워 새끼야... 내가 피우는 수선에 잠이 깬건지, 멍하니 앉아 뻗친 머리를 벅벅긁어 대는 히단이 한심하다는 듯 처다본다. 누가 누굴 가르치는 건지 모르겠다. 니가 더 더러워 임마.

 

" 나 그거 사다줘 . "

" 그거라 그럼 내가 아냐? 그리고 니 건 니 돈으로 사. "

 

간만에 꺼내 신는 조리에 발이 조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조린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지갑 안의 카드와 현금을 꼼꼼하게 살피는데 히단이 난데없이 그걸 사달랜다. 그래서 그게 뭔데.

 

" 왜 딸칠 거라도 필요해?  "

 

사다줄까? 장난 스럽게 처웃으면서 말하곤 현관문을 열자 씨발 꺼져! 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병신.

 

**

 

탈탈 거리는 조리를 끌고 동내 가까운 마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못내 무겁다. 어제 술만 안마셨으면 지갑도 빵빵했을테고, 내 통장 잔고도 빵빵했을거고...지금 내 허리도 이렇게 병신은 아닐텐데. 대체 뭘한건지 무겁게 쑤셔오는 허리에 괜시리 신경이 날카롭다. 그렇다고 티내면 분명히 히단이 생리라도 하냐며 놀려올게 분명해서, 입 꾹 다물고 최대한 티는 안냈는데. 최악이다. 그냥 집에서 쉴걸 뭐가 심심하다고 밖에 나와서. 집 밖을 나온지 채 십분도 안돼서 후회가 쏟아진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어오고 집과 십오분 거리에 떨어져있는 마트에 다다르자 마자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는데,반짝, 하고 문자 메세지가 때 마침 도착한다. 스팸인가 싶어 바로 삭제 하려다가, 발신인을 보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확인 버튼을 꾹 누르니' 나위즐사다줘안사오면너고소 ㅡㅡ' 다닥다닥붙어 있는 문자들에 잠깐 현기증을 느끼다 간신히 해석하곤 신경질 적으로 답장을 보냈다. 제일 중요한걸 안쓰냐 이 새끼는 . '바닐라?아님초코퍼지'

 

느긋하게 장바구니를 챙기고 다시 플립을 열어보니, 채 일분도 안돼 답장이 와있다. ' 당연히초코퍼지지ㅋㅋㅋㅋㅋ ' 물을 걸 물으라는 히단의 문자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덩치는 산만한게 입맛이나 하는 짓이나, 말투는 꼭 초딩이랑 똑같애선.

 

-

 

떨어진 치약과 두루마리 휴지를 대충 쟁겨서 계산을하고 일부러 녹을까 싶어 마지막으로 미뤄둔 아이스크림을 사기위해 식료품 코너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위즐 안먹은지 존나 오래됐네. 이상하게 나도 조금 신이나서 발걸음이 빨라져버린다. 바보 옆에 있다가 바보 병에 옮았어. 젠장. 뭐, 그래도 아무렴 어떤가 싶다. 챙겨 줄 사람도 없는 말단끼리 챙겨줘야지. 왠지 실실 웃음 까지 나오는게, 미친게 틀림없다. ' 야 ㅋㅋ 곧감 ㅋㅋ ' 화면을 보지도 않고 대충 문자를 찍어보내곤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넣었다. 얼른 사서 가야지. 매장 안에 몇개 없는 창문으로 보는 밖은 벌써 어두컴컴하다. 더 추워지기 전에 가야한다.

 

찬 기운이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냉동고 앞에 서니 얇게 입고 나온 탓인지 으슬으슬 몸이 떨린다. 으아 춥다. 팔을 부비며 위즐을 찾는데, 딱 하나 남은 위즐이 얼음에 뒤덮혀 처박혀있다. 자잘하게 덮힌 얼음 부스러기들을 걷어낼 엄두가 나지 않아 잠깐 망설이고 있는데 뜬금없이 옆에서 튀어나온 손이 툭툭, 얼음 조각들을 털어내더니 딱 하나, 남았던 위즐을 가져가 버린다. 어 씨발 안돼는데.

 

" 잠깐만요. "

 

부르는 소리에 발걸음이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눈동자엔 의문같은 건 없었다. 다만, 조금의 권태로움과 , 조금의 짜증스러움 뿐. 괜시리 내가 잘못한것 같아 몸을 사리고는 뻐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진짜, 웃긴 소린건 아는데요.

 

" 그거 제가 먼저 봤...거든요..."

 

스스로도 어처구니 없는 말에 뭔 소리 하냐는 듯 짜증스레 구겨지는 상대방의 인상을 상상했건만, 의외로 상대는 순순히 들고있던 위즐을 내밀었다. 그래요? 하는 짧은 대답과 함께. 생긴 것과는 다르게 너무 순순해서 얼이 빠질 정도였다. 아, 저...죄송합니다. 하며 위즐을 받아내자 마자 괜찮다는 짧은 대답이 떨어지고, 위즐에 처박혀 있던 고개를 들었을땐, 이미 붉은 머리칼의 그는 신고 있던 삼선슬리퍼를 질질끌며 계산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붉은 머리? 설마, 그 붉은 머리는 아니겠지. 뒷골목 세계를 한 순간에 혼돈으로 밀어넣은 장본인이 마트에서 유유하게 삼선슬리퍼나 끌면서 쇼핑이나 하고 있진 않을 것 아닌가. 더군다나 손에 든 저 가정적인 노란 장바구닌 어쩔건데. 아닐거다. 아니여야만 하고. 그런데, 세상에 붉은 머리가 그리 흔하던가.

 

***

 

끼익- 하고 문열리는 소리가 집안에 가득 울린다. 분명 티비소리로 떠들썩 해야할 거실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 어디, 갔지 이 새끼. 혹여나 먼저 간다는 문자를 보낸건가 싶어 핸드폰을 확인 하는데, 메세지함을 아무리 뒤져도 ' 당연히초코퍼지지ㅋㅋㅋㅋㅋ ' 가 마지막으로 수신된 메세지란다. 뭐야 이새끼. 집에 간건가? 그럼 말을 하고, 가던지. 그런데 내가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왔나. 그냥 , 열려 있었던거 같은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막연하게 불안해져,

 

" 야! "

 

큰소리로 불러보는데. 여전히 묵묵한 거실에선 대답이 튀어나오질 않는다. 무슨 일, 있나. 답잖게 걱정을 끼치기 시작한 히단 새끼에게 짜증이 나려는데 어- 왔냐, 하는 목소리가 저 구석에서 들려오는거 같기도 하고. 뭐하다가 이제 나와.

 

" 씨발 진짜 놀랬잖아. "

" 아... 깜빡 잠들었어. "

 

웃기고 있네, 나간지가 언젠데 깜빡이래. 불도 안 켠거 보면 골아 떨어진지 꽤 된 듯 싶다. 병신새끼. 기면증이라도 걸렸나 왜이리 병든 닭처럼 잠이 많아진건지. 주말이라서 그래 주말, 하는 같잖은 대답은 못들은 걸로하고 부엌에 불부터 켰다. 그새 어둠에 적응이 됐던건지, 부셔오는 눈을 살짝 찌푸리면서 장봐온것들은 식탁위에 차곡차곡 올리는데, 맨 위에 꺼내진 위즐을 낼름 , 히단이 가져가 버린다.

 

" 하나 남은거 가져 왔지, 응 "

" 새끼ㅋㅋㅋ 좀 까리하넼ㅋㅋ "

 

병신같이 처웃으며 뚜껑부터 여는데 좀 녹았다고 투덜거리기에 뒷통수를 갈겼다. 그걸 어떻게 가져온건데. 생색은. 투덜거리며 포크를 내밀기에 감사. 짧게 대답하곤 히단 손에 들린 위즐을 크게 떠 한입에 넣었다. 존나 맛있네. 내 말에 히단이 씩 웃으며 자신도 크게 떠 먹고는, 너무 녹았다고 내 반응을 살피더니 좀만 얼리고 먹자며 뚜껑을 닫아 냉동실에 처 박는다.

 

" 야 나 오늘 마트에서 빨간머리 봤어 "

" 그게 뭐, 신기하다고? "

" 아니 병신아. 위에서 하도 빨간머리 빨간머리 하니까 괜히 좀 무섭더라고, 응."

 

포크를 계속 질겅거리다, 식탁위에 내려 놓고 입안에 아직 남은 초콜릿맛에 입맛을 다셨다. 근데, 아닐거야. 존나 씨발 그 꼴로 위즐이나 사가는 인간이 총들고 사람 여럿죽인 미친놈들 머리에 서있는 미친놈이겠냐.

 

" 하긴, 병신아- 입에 초콜릿 묻었어. "

 

뻗어나온 손이 입가를 거칠게 문지르기에 정말 손가락을 씹을 기세로 입을 벌려 콱 깨무는 시늉을 하자 피식, 비웃는다. 드러운데다가 추잡하기까지하네.

 

" 참나, 추저운새끼 따먹는 넌 뭔데. "

" 친구 따먹는 개새끼? "

 

미친놈 . 결국 나도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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