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닫으며.
00. 닫는다는 표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2016년을 닫을 것이다.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내가 열어둔 것도 아니고, 그냥 모든것이 일어난 일이기때문에, 그냥 싸그리 과거에 우겨넣어놓고 닫아버릴 것이다. 올 한해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과연 내가 그것을 오롯이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는가는 사실 중요치 않다. 일어난 일에 감사하라는 말은 쉽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려운 일들이었기때문에 지금 이 글을 쓰는 마음도 조금은 이상하다.
01. 올해는 시작부터 조금은 과했다. 작년 말부터 나에겐 조그마한 붐이 일었는데,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꽤 내안에서 붐을 일으켰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겨울에 수술을 하고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1년 남짓만에 큰 수술 두개를 받으면서 내 몸은 꽤 많이 허약해졌다. 살도 4~5키로가 빠졌고, 전반적으로 잘 지치고 늘어지는 몸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었던 상태기도 했다. 그걸 너무 쉽게 간과한 것인지... 아님 올해가 시작부터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와서인지. 하지만 처음 맞는 자취의 즐거움과 기대감때문에 설레는 나날이기도 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거지같은 식습관은 내 위장을 망치기 딱 좋았고, 2월말에 소화기관에 크나큰 빵꾸를 맞으며, 나는 올 초를 시작했다. 지나치게 아픈것에 예민해졌던 탓도 있을 것이다. 수술을 연달아 두번 한 상태니 오히려 더 예민하게 굴기도 했다. 나는 거의 집착에 가까운 수준으로 건강을 회복하겠다며 말도 안되는 식단을 소화하며 4학년을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자취내내 힘들었고 포기하고 싶었다. 맛있는 것들 먹고 싶었지만 위가 아프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말 3달 내내 죽과 샐러드만 먹었다. 과장이 아니라. 몸의 힘은 없고 매일이 어지러운 몸상태를 가지고 학교를 가야했으며 과제물들을 소화했어야 했음에도 스트레스 조금 받았을뿐 지나치게 힘들진 않았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라 철봉에 매달리기도 했고 엉엉 울면서 학교 앞 운동장을 돌기도 했다. 그게 6월 초였네. 이 위장 빵꾸로 인해 무려 4키로가 더 빠지면서 나는 처음으로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어봤다. 무려 15년 만에...ㅋㅋ... 키가 컸기 때문에 10살때부터 이미 몸무게 앞자리가 5였고, 계속 그렇게 유지해왔으며, 대학교 3학년때는 하도 잘먹어서 앞자리가 6이었는데... 수술 한번에 훅 깎이고, 또 깎이고 이번에 연달아 깎이니, 1년 남짓 10키로가 빠진 셈. 거의 병자 수준이 되었고 컨디션 난조가 심했다.
매일 아침 헛구역질로 시작했고, 3월 초엔 태어나서처음으로 응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갔다. 4학년의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는데, 업무량은 별로 없었다. 그냥 진짜 말그대로 스스로에게 준 푸쉬가 날 이렇게까지 만들었던 것. 내 위장은 거의 정상수준에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02. 6월 초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몸이 안정 궤도를 찾았다.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에 밥을 제대로 못 먹었고 이주 동안 포카리 스웨트만 마셨다. 그래도 좀 낫더라. 삼주를 힘없이 다니고, 종강을 맞이한 다음 나는 결심이 섰다. 방학까지 다 나아서 이제 괜찮아져야지. 하고. 그런데...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가 나에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이었는데, 놀라움이 먼저였고 그다음은 당연하지만 두려움이었다. 나는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엄마의 아픔에 대해 항상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참...이날부터 정말 많이 울었다. 6월 30일. 이날부터 거의 눈이 뒤집혀 살았다. 입에 뭐가 들어가도 상관없었다. 엄마만 괜찮아지면 다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밥을 닥치는대로 먹고 힘을 내려고 애썼다. 엄마에게 신경쓰이는 딸이 되기 싫었고,나는 엄마의 버팀목이 되어줄거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03. 엄마의 수술이 지나고, 나는 마음가짐을 단단히하고 2학기에 접어들었다. 1학기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푸쉬와, 갑갑함이 산재했다. 방학내에 거의 작업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학교에선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것이 분명했으므로 변명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인생 최고의 이상한 사람인 정씨만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피폐해지진 않았을 것이리라. 소화기관은 안정궤도를 되찾아 이제 뭐든지 잘 먹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스트레스라는게 신기하지, 멀쩡한 소화기관도 멈춘것처럼 느껴지게하니까. 하여간. 2학기에 들어선 정씨는 더더욱 우리에게 이상한 짓을 시키기 시작하며 그의 무능함을 뽐냈는데 그게 아주 짜증이 났다...진짜... 어떻게 교수가 된건지 알 길이 없을 정도로 엉망이고, 교육자의 자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회사에가면 이런사람이 있을까봐 무서울정도로 정말 싫었다. 교수와 그렇게 싸워본것도 처음이었다. 정말 다행인건 그 사람이 자존심이라도 쎄다는거. 그래서 본인의 이미를 더이상 깎아 먹기 싫어하는게 눈에 보였고 그래서 대우가 좀 나아진 것. 이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난 진작에 그 사람 수업을 때려쳤을거다. ...거두절미하고, 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정말 자존감과 내 앞길에 대해 막막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여전히 이 길을 걸어나가도 될까. 왜 정말 1~3학년 때엔 이런 생각이 들지 않다가,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런 생각에 머물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정말 괜찮았는데 너무 힘들었었나보다. 10~11월은 너무 끔찍했다. 내가 너무 싫었다. 거짓말 하지않고 3달 내내 단벌로 다녔다. 내 몸에서 냄새가 많이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별로 그런 것 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을만큼 그냥 끔찍했다.
죽으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그냥 끔찍하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우울증은 다른게 아니였다. 죽고싶다는 생각도 의지가 있어야 생기는 거다. 정말 끔찍하고 정말로 너무 환멸이 날정도로 무기력했다. 아무것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안 느껴졌다. 그런 상태였다 내가.
이해받고 싶었는데, 이해해줄 사람이 없었다. 이해해주기를 바라기에도 민망하고 죄스러웠다. 그래서 그냥 눌러담았더니 오히려 더 엉망이 됐고, 표현하면 내 성에 차지않아 엉망이 됐다. 진짜 엉망진창이었네 ㅋㅋㅋㅋ 그걸 내가 소화하기까지 너무 오래걸렸고, 사실은 지금도 조금 괜찮아졌을뿐 이제야 서서히 회복 단계에 들어선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취업을 준비할 힘이 없다. 내 근육은 이미 다 옹송그레 말라버려서 추진력이 없다...ㅋㅋㅋ... 달려나갈 힘이 있어야 달려나가지, 지금 이 상태로 달려나갔다간 난 또 말라죽을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아주 조금은 조용히 물도 좀 마시고, 다리 힘도 비축해둘까 싶은데 참, 나를 빼고 달려나가는 이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또 갑갑해진다. 생각이 많아지고. 난 왜 사람이지... 넘 괴롭네 안 괴롭고싶다. 진짜 너무 많은 일이 한거번에 나를 닥쳤다. 무슨 홍수처럼. 손으로 막아지지 않는 그런 무슨 범우주적인 스케일로.
올해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사실 얻은 것도 많은 한해이다. 아버지를 회유하고, 가족을 재건하고. 행복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고, 내 꿈을 다시 생각했다. 사실 꿈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사는거지. 남들도 그렇게 사는거니까. 하고 생각했다. 아니다. 덤덤하고 싶었던거다. 나는 아프기 싫어서 어리광을 부린거다. 내 꿈은... 아마도 있다. 자세히는 모른다. 근데 분명 있다. 이걸 12월 16일 극장에서 라라랜드를 보고나서야 좀 알겠더라. 영화를 보는내내 울었고, 벅찼고, 꿈을 꾸고 싶어졌다.
무언가에 열중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너무 아름답다.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행복해 보인다.
사람의 열정으로 타인의 열정을 깨울 수 있다는 말은 전적으로 맞다. 나는 그 영화를 통해서 열정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나는 아직 길을 헤매고 있다. 내 길이 어딘지 모른다. 정말 틀린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겠다. 그런 직업이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려고 한다. 그러고 싶다. 그리고 내년엔 좀더 소중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내가 가진것들에게 최선을 다하기.
그리고 우리가족 행복한 일만 있기를. 많이 흔들렸으나, 부러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올해를 닫을 것이다. 마무리가 아니니까. 2016년은 닫혔지만 나는 언제고 2016년을 열어볼 것이다. 2017년에도, 2018년에도. 올해를 잊을 수 없고, 데껴봐야지. 그리고 내 소중한 것들이, 계속 소중한 것으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애쓰고, 아끼고, 보살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