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曉

itchy feet

Rangje 2014. 7. 8. 17:33


사소데이+히단

2014/02/21 22:23


일 거리들이 밀려있었으나, 귀찮아 대충 난자한 서류들을 한 쪽으로 미뤄뒀다. 아, 눈 피곤하다. 잘 쓰지도 않던 안경을 던지듯 내려놓고는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는 데, 그 흔한 게임초대도 오지 않던 핸드폰에 카톡알림이 울렸다. 웬일이래. 의아해하며 들여다본 액정은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도 불구하고, 참 낯익은 이름이라. 

 

' 나 입국했어. 밥 좀 같이먹어줘 '

 

참, 얘도 여전하다 싶었다.

 

-

 

" 그래서 잘 다녀왔어? "

 

늦은 밤에 열린 곳이라곤 국밥집 밖에 없는 지라, 공항 근처 국밥집에 자리를 펼치고 앉았다.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방금 나온 김이 올라오는 국밥에 고개를 처박고 볼이 미어터져라 먹는 놈이, 어딘가 좀 처량해 보였다. 여행이 아니라 무슨, 봉사 다녀온 놈도 아니고. 엉 뭐 대 충, 그 뭐냐 나 깍두기 좀. 하루 종일 굶은 건지 물도 안 마시고 한참을 먹던 데이다라가 젓가락을 펼쳐보이며 말을 붙이기에 우선 애 밥부터 먹이자는 심정으로 찬을 가져다 줬다. 

 

" 기아체험 하다 왔냐. "

" 아니, 그건 아니고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아쉬운 맘에, 응 "

 

밥도 굶고 그냥 뭐. 하며 벌써 빈그릇을 보인 국밥그릇을 닥닥 소리나게 긁는 놈의 얼굴은 좀 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하고. 확실히 초췌해 보이기는 했다. 넌 안먹어? 손도 안대고 그냥 가만히 지켜만 보던 내가 드디어 궁금해졌는지 물어오기에 난 야근이라 야식먹었어. 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금방 너는 왜 맨날 통하지도 않을 거짓말을 하냐고 쿠사리를 먹었지만.

 

국밥 그릇을 국물 하나까지 싹싹 비운 데이다라는 그제야 구부린 몸을 죽 펴고 의자에 기대앉았다. 아 살겠다. 깊은 한숨과 함께. 그래 뭐 잘 먹었냐. 하고 물어보자 데이다라가 입을 닦으며 엉 고마워. 너밖에 없다.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 너 밥 굶고 다니는 건 알아? "

" 누가? "

 

누구겠냐. 눈치가 없는건지, 모르는 척을 하는건지 순진한 얼굴로 물을 마시던 데이다라가 의아한듯 쳐다봤다. 마주 본 표정을 보아하니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것 처럼 보이니, 맞장구 쳐주기로 했다. 내가 말해주면 되지 뭐.

 

" 사소리말야. "

" ... 아직도 화나있겠지? "

 

애써 무시하던 일들이 이제사 생각나는지 데이다라는 좀 심각해보였다. 

 

" 화 나있겠지, 너 같음 안나겠냐. "

 

뜬금없이 비행기표 끊어와서는 나 여행다녀올게, 하면 좋아할 연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물며 사소리가 퍽이나. 듣자마자 일그러진 표정이 보지 않아도 선하다. 간도 크다. 분명 사소리쪽엔 연락도 안하고 바로 나한테 연락부터 한 것같은데. 

 

" 입국했다고 말은 했고? "

" 이 시간이면 잘 시간이야, 응. 아마... "

" 그 놈이 11시에 잠을 잔다고? 웃기고 있네. "

 

우선 오늘은 너네집에서 자면 되지 않을 까? 매를 벌 짓을 점점 늘리고 있는 놈이 불안해서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미쳤냐, 그랬다간 나한테 화낸다니까. 더군다나 사소리가 저 놈의 입국날짜를 모를리도 없고, 지금쯤 벼르고 앉아 연락만 기다리고 있을텐데. 참 사이에 끼여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지 모르겠다.

 

딱 팔개월전에 뜬금없이 데이다라는 나 여행가. 하고 엄포를 놓았고. 그래 뭐 여행 갈 수도 있지. 하고 생각했던 것들은 기간을 듣자마자  금세 쟤가 제 정신인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타고난 방랑벽에 쏘다니길 좋아하는 놈은 언제나 말도 없이 일을 저질렀고, 사소리는 매번 조용히 화를 냈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국내 여행 삼일을 시작으로 일주일, 한 달 간격으로 늘어나더니 지도를 펼쳐놓고 이제 해외에 나가야 한다며 한 두 달 다녀오는건 당연지사였다. 휴학계를 내놓고는 나 유럽 다녀올게! 하고 뜬금포를 놓던 시절도 있었지. 참 그립다. 지금에 비하자면 그 때는 애교니까.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데이다라는 흔한 취업전선에 뛰어들기전에 거나하게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인도에, 중동, 남아프리카까지 다 돌아보고 오겠다는 포부는 아무나 가지지 못하지. 그것도 혼자서. 그래도 저도 겁은 났던지 바로 사소리에게 말하지않고 나한테 먼저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너 죽을 거야, 아마. 하고 말을 해도 그 굳은 신념은 깨질 줄을 몰랐다.

 

그리고 드디어 이 미친 일정이 사소리의 귀에 들어가던 날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었는데, 사태는 좀 심각해 보였다. 

 

" 왜 너 죽인대? "

" 아니 그냥 헤어지자는데 "

 

와...쎄다. 하고 내가 할 말을 잃자 데이다라는 그제야 묘하게 울먹이는 소리로 아씨 나 어카지. 하고 말을 붙였다. 그러게, 팔개월은 좀 미치긴 했다니까. 

 

" 솔직히 많이 참긴 했지, 니가 좀 심했어. "

 

한 두번도 아니지 않은 가. 같이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일정 세우고 말도 없이 훌쩍 훌쩍 떠나는 저 몹쓸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사소리의 포부가 여기 까지 느껴졌다. 아무렴 나라도. 한 두달도 아니고, 팔개월을 어찌 혼자서 타국에 던져 놓는단 말인가. 그것도 요즘 범죄국으로 참 핫한 인도에, 태러로 시끄러운 중동. 남아프리카는 뭐, 말 할 것도 없고. 나라면 가라고 해도 가기 싫을 곳을 저는 그렇게 미지의 제 3세계라며 가고 싶댄다. 

 

" 그냥, 니가 이번엔 양보한다 손 치고- "

" ...그래도 갈거야. "

 

어르듯 열심히 달래고 있는 데 제법 단호하게 말을 끊어먹는다. 

 

" 뭐? 헤어질거야? "

" 싫어, 안 헤어져! "

 

떼쓰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이래봐야 소용없다고 한마디 거들자 그제야 좀 조용해진다. 안그래도 한바탕 질질 짤았는지 목이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그럼 기간만이라도 좀 줄이던가. 절충안이랍시고 내놓은것도 싫어, 간신히 짠 플랜이란말이야. 하고 빽 고함을 지르기에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 이 미친놈이 왜 나한테 지랄이야. "

 

짜증이 잔뜩 솟은 목소리로 툭 뱉으니 데이다라는 토라진 목소리를 숨지않고는 펙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성질은 드러워가지고 진짜. 

 

그러고 나서 들은 소식은 뭐어, 안들어도 간단명료하고 살벌했다. 그대로 아침에 인사도 안하고 튀었단다. 제 정신이긴 한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잠시, 그걸 자랑스럽게 일주일이 지난뒤에 엽서랍시고 써 붙인걸 보아하니 참 간이 크다 못해 배밖으로 나왔다 싶다. 그러고 나서 데이다라는 꼬박 꼬박 일이주 간격으로 엽서를 써붙였다. 늘 달라지는 각양각색의 엽서들 위에 전형적인 남자애 글씨로 갈겨 적은 듯한 성의없는 편지의 내용은 행복으로 가득차 보였다. 뒷 일은 생각도 안하고 저질러 놓고는 아주 저 혼자 신이 났다. 물론 간간히, 사소리의 안부를 묻긴 했지만 답장을 해줄 수 없는 나로써는, 차마 사소리가 제 엽서를 보지도 않고 우편함에 그대로 처박아 놨다는 말은 전할 수 없었다.

 

데이다라가 여행을 떠난후 정확히 일 이주가 지나서야 사소리를 만날 수 있었는데, 당연한 소리지만 매우 심기가 불편해 보였고, 네 놈이 입국하는 날 나는 너를 조저버리겠다는 굳은 의지가 아주, 투철해보였다. 살벌한 기운에 내가 그저 허허 웃으며, 그래도 헤어지진 않을 거잖아? 하는 떠보기 식 물음에 사소리는 대답이 없었다. 물론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었으니, 넌 이제 좆됐다는 말도 역시, 전할 수 없었고.

 

그렇게 데이다라가 제 청춘 쫓아간지 세 네달이 지나고, 뉴스에서 급작스러운 특보가 떴을 때, 그 날 저녁을 먹다가 마시던 물을 뱉을 번 했었다. 워낙 위험한 국가로 여행이고, 어느정도 마음을 먹고 있었다지만, 누구든 그 주변국가에서 태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이 놈이 건사할까 걱정이 안 될리가 만무했다. 하필이면 조금 큰 규모의 태러였고, 일일히 부상자나 사망자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애가 안타려고 해도 타기 마련이라 유일한 연락방법인 엽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놈이 귀찮게도 보내오던 엽서가 뚝 끊겨 버린게 아닌가. 

 

참 그때는 얼마나, 간이 철렁했는지. 내가 이러는데 애인인 사람은 오죽하겠는 가. 얼마나 걱정이 됐으면 혹시 너한테 연락 왔냐고 그 사소리가 나한테 전화를 했을 정도니. 그 때는 나도 나름 걱정도 많이되고, 진지하게 생사가 궁금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근심이 깔린 목소리로 나도 모른다고 대답했을 때만해도 참, 이제 어떡하나 싶어서 착찹했거늘...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간신히 아침을 맞이했을 때, 우편함에 보란 듯이 꽂힌 엽서를 보고 분노 아닌 분노를 터트릴때도 있었지.

 

엽서내용은 아주 심플했다. 얘는 테러가 일어났는 것도 제대로 아는 게 없어보였다. 그냥 옆나라가 좀 시끄럽네! 수준의 묘사 였으니 말은 다했지. 물론. 사소리한테도 엽서는 간 듯했다. 왜냐면 매우 화가 나 보였으니까.

 

" 너 일단 빨리 들어가라. "

" 어딜? "

 

지금 저걸 말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까지 사태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서. 집말이야. 사소리한테 연락도 안했다며. 하고 대답하자, 데이다라가 아. 하며 그제야 아는 채를 해온다. 그래 가야지. 하고 떨떠름한 얼굴로 말하는 데이다라를 보며 한숨을 크게 쉬자, 놈이 냄비 바닥에 쫄아들어가는 목소리로 야, 같이 가주면 안돼? 하고 눈치를 본다. 솔직히, 무서워, 응. 하고 겁먹은 얼굴을 하는 놈을 보며, 이번엔 절로 내 한숨이 터져나온다. 그래, 가자, 가.

 

 

***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그대들의 집 앞에서, 데이다라는 겁이 났는지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도어락을 열어 재꼈다. 비밀번호가 바뀌었을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기세좋게 문이 열린다. 웬일이래. 의아함도 잠시. 눈치를 봐가며 안으로 들어가는 데이다라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무색하게 거실의 불은 환히 켜져있고, 무슨, 게임의 최종보스마냥, 사소리가 버티고 앉아 있었다. 굉장히, 무섭군.

 

데이다라는 사소리를 보자마자 웃었다. 나는 딱히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맞아 들어갔는지 여전히 별 반응은 없어보였다. 나도 옆에서 괜히 멋쩍게 웃으며 나 야근이라 어쩌다 보니 내가 데리고 왔어, 하며 묻지도 않은 말에 변명을 늘여놓아야 했다. 비참하다. 씨발. 나나, 데이다라의 이런 비굴한 행태에도 사소리는 그다지 미동이 없었다. 화가 단단히 났구나 싶다.

 

흔한 예의 ' 나 화남 ' 이런 식의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그저 쇼파에 앉아 가만히 데이다라를 쳐다보는 그 찰나의 시간이 무슨, 영겁의 세월마냥 길다. 하이고 진짜,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지. 난 무슨 죄라고 매번 이렇게 둘 싸움에 끼여서 피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 다녀왔어. "

 

데이다라는 꽤나 뻔뻔했다. 나 같으면 무릎이라도 꿇고 미안하다고 빌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저렇게 당당하게 다녀왔다며 웃는 낯짝이라니. 그런 빤한 작태에 기가질린다. 넌 이제 사소리한테 죽었다. 불똥이 튀기전에 얼른 발을 빼야겠다 싶어 한 걸음 물러서는 차에, 불같이 화를 내야할 사소리가 태연하게, 데이다라를 쳐다보며 대답하는 말이, 너무 의외라.

 

" 그래, 어서와. "

 

들으면서도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에 되려 내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왜 저래? 미쳤나. 어딘가 하소연 할 곳도 없이 사소리를 쳐다보다가 돌린 고개 끝에 데이다라가 그럼 그렇지, 하고 웃는 표정이 보였다. 아냐, 넌 저기서 더 깝치면 정말 죽는다. 눈치는 개미 똥만큼도 없는 데이다라 놈이 더 까불기전에 상황을 종료시켜야겠다는 맘에 무슨 말이라도 꺼내자 싶었는데, 저 놈의 입방정이 먼저 물고를 텄다.

 

" 재밌었어! 팔개월이 어떻게 간지도 모르겠다니까, 응. "

 

야 너, 쫌...

 

" 기념품은 안 사와서 많이 없지만, 사진은 많이 찍어 왔지! "

 

제발, 저 새끼가 입 좀 다물었으면.

 

사소리가 괜찮아 보이자 신나서 떠드는 꼴에 졸지에 내가 사소리의 눈치를 보고 앉았는데, 사소리는 어딘가 평온해 보였다. 데이다라가 아주 신나서 떠들고 있는걸 가만히 쳐다보며 듣고 있는데, 차라리, 불같이 화를 내는게 낫다. 저 조용한 놈이 언제 터질 지 몰라 불안해 죽겠는데 저 새끼의 입은 다물어 질 줄을 몰라요. 간신히 내가 옆구리를 찔러 멈추게 만든 데이다라의 청춘 일장연설이 끝나자마자 사소리는 희미하게 웃었다. 

 

" 그래,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

 

진짜, 어딘가 미친게 아닐까. 뜨악한 표정으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사소리가 웃던 낯을 바꾸지도 않은 채 말을 이었다.

 

" 짐 싸놨으니, 가지고 나가. "

 

그럼 그렇지. 

 

 

***

 

 

데이다라는 크게 충격 받은 듯 했다. 사소리의 '나가' 발언을 끝으로 데이다라는 뭐라고? 반문했고, 사소리는 똑같이 짐, 가지고 나가라고. 하고 친절히 말을 이었다. 내가 봐 온 사소리 중에서도 가장 평온해 보였고, 무서웠다. 이내 울상이 되어서는, 내가 어딜나가, 하고 되려 지가 성질을 내는 데이다라를 보다 못해 뜯어 말려 앉혀 놓고는, 야, 그래도 안전하게 돌아온게 어디냐, 하고 쉴드아닌 쉴드를 쳐주자, 사소리는 미동도 하지않았다.

 

" 그래, 다행이야. 잘 다녀왔으니, 이제 나가라고. "

 

웃던 낯이 일순 굳어버리는게 아주 무서웠다. 결국 제 화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었는지 종내 표정을 굳히는 사소리를 쳐다보는 데이다라의 표정은 말 그대로 황망함 그 자체였다. 내가, 까불지 말라그랬잖아... 억울한지 입만 벙긋대다가 이내 입을 굳게 사려물더니 얼굴이 발갛게 달아 오른다. 화가 나는건지, 어이가 없는건지. 눈 가에 눈물이 그득하게 차오르는다. 자존심이 밥먹여주는 애라 이 꽉 깨물고 참는 게, 보기 싫어도 보였다. 병신. 뭘 잘했다고 도끼눈으로 사소리를 노려보는 걸 야, 그만하고 우선 가자. 하고 끌고 나오는데 데이다라는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담지 않았다. 어쩌려고 저러는걸까.

 

" 어쩌려고 그러냐 너. "

 

현관까지 안 간다고 부득부득 우기는걸 간신히 끌어 내놓고 이해가 안가 물으니, 데이다라는 대답이 없었다. 가만 보아하니, 사소리가, 저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고, 지금은 그 쇼크가 너무 커서, 저도 어찌해야 할 줄 몰랐던 것 같다. 개기기는 왜 개겨. 무슨  애 보는 보모도 아니고, 일하다말고 끌려나와서 밥사주고, 데려다줬더니 같이 쫓겨나질않나. 하여간 얘랑 있으면 되는게 없다. 

 

" 우선 우리집에서 지내, 내가 다시 말해볼테니까. "

 

왜 그래야 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장이라도 질질짤것같은 얼굴에 대다 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살살 달래자 데이다라는 그제야 한 풀 꺾인 목소리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는 집에 도착 할 때 까지 입한번 벙긋 하지않고 다물고 있다가, 도착하자 마자 도축장에 끌려가듯 질질 발을 끌며 걸어 들어가면서, 내가 그렇게 잘 못한건가. 하고 자문을 하는 놈을 보니 참, 연애가 서툴긴 하구나 싶기도 하고. 멍청한거 같기도하고, 그저 측은하다.

 

***

 

그 이후에 데이다라는 약간 어디가 망가진 느낌이었다. 어제만 해도 자기 직전까지 울기세로 말도 안하고 분한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더니, 눈을 뜨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씩씩하게 밥을 처먹고, 아주 쾌활한 목소리로 난 자유인이다! 하고 집안에서 외치기까지 했다. 놀란 마음에 미쳤냐, 너. 하고 욕을 해도 데이다라는 깔깔대며 그저 웃었다.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그러고는 곧장 컴퓨터를 켜더니 나는 이별여행을 떠날거라며 플랜을 짜는데, 저게 진담일까, 농담일까 진지하게 고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고 있기를 몇분, 조울증이라도 걸린건지 금세 우울해져 히스테리를 부리다가, -씨발 내가 뭘 잘못했다는거야!- 다시 깔깔대기를 반복한다. 나는 그 꼴을 더는 볼 수가 없어서, 애써무시하고 회사에 출근을 했고, 청춘 잡으신다고 아직 취직조차 못한 찌글대는 백수새끼 밥먹으라고 밥까지 차려다 주고 나갔거늘, 돌어왔더니 손도 대지 않았더라. 아직 정신나이는 어린 시절 그대론가 보다. 철이 안든 건지.

 

빈 속에 맥주캔을 따먹고는 식탁에 널부러져있는 망나니놈을 데려다 눕혀놓자 반짝하고 눈을 뜨더니. 야! 너도 내가 그렇게 잘못했다고 생각하냐! 하고 소리치기에, 닥치고 잠이나 자. 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버리자 그대로 조용해진다. 

 

데이다라는 일주일 내내 그러고 살았고, 자기 스스로 씩씩하게 밥 잘 처먹고 잘 싸고하다가도, 종내 감정의 끝은 우울이었다. 그래도 처음은 오기인지, 깡인지 모를 즐거움이 비중이 더 많았건만, 어느새 감정선은 늘 바닥을 치고 있었고, 집을 나온지 삼주째에 가까워 지자, 데이다라는 종내 울음을 터트렸다. 보다 못해 사소리에게 전화를 걸어, 야 얘 진짜 심각하게 이상하다고 일러 바쳤지만, 사소리는 긴 한숨과 함께 그냥 자기 하고 싶은대로 살게 내버려 두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아니, 그러니까 애가 운다고. 차마 마저 말하지 못한 말을 전해봐야 안들리겠지.

 

쇼파위에 무릎을 끌어안고는 자존심은 있었는지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데이다라 놈이 못내 불쌍해져서 야, 그냥 가서 사과해. 하고 말을 걸었더니 이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어버린다. 드라마찍냐. 엉엉 소리내면서 우는 놈이 측은하면서도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사랑싸움은 집에서나 하지. 한참을 울더니 데이다라는 꽤나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 사과하면 받아줄까,응 "

 

모르지 임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차마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고, 그래 받아줄 거야, 하고 맞장구를 쳐주니까, 데이다라는 다시금 울먹이며, 안받아주면 어떡하지 하고 울상이다. 그러고 있지말고 일단 가보라고 엉덩이를 차주고싶었지만, 그래도 불쌍하니까 착한 척 그래, 우선 가보기라도 하라며 달래주자 데이다라는 아냐, 그러면 더 싫어할거야. 하고 땅을 파고 들어가는데, 제발 사소리가 사과 좀 받아줬으면 좋겠다.

 

그러고나서 한참을 더 징징대는걸 간신히 달래서 자기 방에 들려보냈다. 이대로 있다가는 영영 재결합은 커녕 내가 귀찮아 지겠다 싶어서, 사소리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울어댔다는 걸 전하자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동하는지 잠깐 침묵하더니 괜히 할 말이 없는지 나한테 되려 니가 그걸 왜 전하냐고 성질이다. 아주 둘다 짜증나네 정말.

 

그 전화를 끝으로 나도 더 이상 참견하면 오지랖이라는 걸 스스로 깨닿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데이다라놈의 조울증에 가까운 히스테리가 안들리기에 의아함을 가지고 방문을 열어 젖히자, 데이다라는 간데도 없고 현관에 가니 신발도 안보인다. 얘가 어딜갔지, 어제 그렇게 우울하다며 찌질거리던 놈이 생각 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집을 나간거 같긴한데, 방안을 대충 살피니 지갑 하나 덜렁 들고 나간 듯 보이는데, 잠깐 슈퍼라도 갔나. 설마, 그럴려고. 

 

우선은 기다려 봐야 겠다 싶어, 출근준비를 서두르는데 한시간이 가도, 거기서 삼십분이 더 가도 소식이 없다. 심지어 핸드폰 까지 두고 갔다. 지갑은 챙기면서 핸드폰은 왜 두고 가? 이해가 안되네. 핸드폰을 놔두고 갔으니, 전화 할 방법이 없고, 설마하니 고작 애인한테 차였다고 뭐 한강투신이라던가, 그런건 아니겠지. 갑자기 사라진 데이다라의 행방에 별의 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 와중에, 설마 다 잘 새벽에 사소리를 찾아갔나, 싶은 생각까지 미친다. 적어도 한강투신보다는 가능성이 배로는 많아보여 핸드폰을 들고 바로 사소리에게 전화를 걸자, 느지막히 사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 혹시, "

" 여기 있어, 끊어. "

 

아니, 난 본론도 말안햇는데. 받자마자 사소리는 내 질문이 알만하다는 듯 칼대답을 하고 끊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그래, 뭐 바쁜가보다. 받았으니 됐지 뭐. 그래...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출근하는 길이 왠지 서글펐다. 그지같은 놈들아.

 

 

***

 

퇴근을 하고 돌아와 마주한 밝은 데이다라의 표정에 기가질렸다. 짐 다시 가지러 왔다고 말갛게 웃어대며 깔깔대는데 한대 때리면 안될까, 하는 생각까지 미친다. 그 날밤 질질 짤다가 결국에는 나 자는 동안 술을 왕창 퍼 마셨댄다. 그리고 술을 마신김에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사소리네까지 열심히 갔다고. 그리고 그 뒤로부터는 별로 기억나는게 없다기에 그래, 그렇겠지. 하고 치웠다. 안 봐도 뻔하다. 초인종을 미친듯이 처눌러가면서 내가 다아- 잘못했다고 엉엉 울었겠지, 온동네에 소문 낼기세로. 어쩔 수 없이 사소리는 문을 열어줬을테고, 데이다라는 술취한 정신에 맨정신으로는 절대 하지도 못 할 온갖 애교섞인 사과들을 쏟아냈겠지. 뭐 보나마나 팔불출인 사소리는, 뭐어. 그래.

 

데이다라 제 짐을 챙기는 동안 이어서 사소리가 들어와서는 짐을 옮겼다. 그래서 아침엔 뭘 한거냐. 하는 물음에 니가 알아서 뭐하게 라는 눈으로 대답도 없이 나를 때리는 놈에게 됐다. 알겠어. 하고 말았다. 끼리끼리 논다. 

 

" 그래 나 이제 갈게! "

 

아주 신이 나서는 데이다라는 웃었다. 죽을 상을 하더니, 그래도 여행보다는 사람이 좋은가보다. 평소에는 잘 잡지도 않는 손을 지가 먼저 꼭 잡고는 좋다고 차를 타고 가는 데이다라를 보며 긴 한숨을 뱉었다. 드디어 사라졌다. 악마놈. 다시는 오지마라 제발. 둘이 싸울때마다 매번 피를 보지만, 이번 싸움만큼 이렇게 크고 오래간적이 없었다. 어휴, 드디어 끝났구만. 징하게도 싸웠다 정말. 배웅아닌 배웅을 해주고는 터덜터덜 현관문을 갈무리해 닫았다. 

 

저렇게 좋다고 붙어먹다가 조만간 또 데이다라는 어떡하지! 하며 우리집에 올거고, 사소리는 불이나케 전화가 와서 거기 있는거 아니 빨리 보내라고 나한테 성질을 내겠지. 아주 좆같은 놈들이다 정말. 그렇게 싸우면서, 대학시절부터 여즉까지 사귀고 있는 데엔 내 공이 아주 큰 것 같다. 너흰 기념일에 니넬 기념하지 말고 날 기념해라. 

 

다시 둘이서 치고 박고 싸울 게 눈에 뻔히 그려져 벌써부터 질리지만, 그래도, 뭐, 둘을 표정을 보아하니, 당분간은 우리집은 평화로울 것 같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