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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여기 왜 와 있는지 잘 모르겠어, 응 "
의미를 모를 정도로 시끄럽고, 난잡한 파티는 새벽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약은 손에 손을 타 파티를 마비시켰지만, 끊어진 이성을 유일하게 붙잡고 있는 것도 마약이 었으니, 데이다라는 조금 의아했다. 불퉁하게 툭 던지듯 말을 던지고는 이제 막 쇼파에서 고통스레 신음하는 남자애 하나를 깔아 뭉개며 앉자 깔린 남자애가 제법 괴상한 소리를 냈다.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이자, 아래에서 킬킬대는 웃음이 들렸다.
" 이유가 어디있어, 그냥 즐기러 온거지. "
병 째로 나발을 불며 남자는 그저 웃었다. 적게 가늠해도 상급생으로 보이는 그는 정신은 말짱해 보였다. 적어도 늘어져 바닥에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한 어느 무리보다는 눈이 맛이 가지 않았으니 정상적일테다. 기품도 의미도 없는 쾌락을 좇는 파티에 초대 되어 취하고 노는 것이야 세 달에 열 손가락을 넘어간다지만, 오늘은 인원도, 분위기도 한 참 맛이 갔다. 애초에 이 말도 안되는 파티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됐다. 학급의 누군가가 여자친구에게 차였고, 그의 무리들이 보란 듯이 그 여자애를 엿먹여 주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는 말렸고, 누군가는 신이나 떠드는 와중에, 깎이고 깎여 중제된 의견이 고작, 조금 떨어져 있는 학교의 여자애들을 불러다 짝을 잇는 파티였다. 한심하긴.
그가 재학중인 학교는 이름만 부른다면 누구나 알 법한 제법 유명한 명문학교였다. 고리타분한 역사를 지닌 남학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일탈을 하며, 누구보다도 방탕하게 그 명문을 이어왔다. 머리 좋고, 명석하며 약삭빠른 아이들이 모여있는 만큼, 그들은 제법 영악하게 자신을 꾸밀 줄 알았고, 어른들에게 신임을 받음과 동시에 아이들 사이에서 군림했다.
여하간, 요는 이들은 언제나 심심치 않게 파티를 벌였으며, 그 파티는 모범생들의 단순한 사교의 현장이 아닌, 섹스와 마약이 난무하는 난잡한 스트레스 해소성 일탈행위에 가까웠던 것으로, 몹시 비밀스러웠고. 어떻게든 소문으로 나돌지 않는 선에서 그들이 그들만의 방법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들은 여전히 사회 안에서는 길이 잘 든 사랑스러운 애완견들이었다.
데이다라는 이런 이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술을 좋아했고, 그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았다. 진탕 먹고, 진탕 토하고 나면 인생의 모든 것을 뱃속에 쓸어 담았다 내뱉는 기분이었다. 나쁘지 않았단 소리다. 다만, 그가 여기에 나타나기 전 까지는 그랬다.
혼란의 중심에서 한참 동떨어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그를 데이다라가 발견했을 때, 데이다라는 조금 당황했다. 왜 쟤가 여기에 있는 거지. 근본적인 질문에 당도했으나 당연스럽게도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시끄러운 음악 사이, 어둑한 조명 밑에서 그는 태연자약하게 그 자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평온하게 가라 앉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읽고 있었는데, 기가 찰 노릇이었다. 누가 봐도 눈에 튀는 붉은 머리는 늘 보던 색깔이었고, 데이다라는 절대로 이런 곳에서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 쟤가 왜 저기에 있어. "
당황스러워 내뱉은 말에, 히단이 크게 웃었다. 내가 불렀는데. 웃기지마. 주고 받는 말이 어쩐지 떨려나오는 것 같았다.
" 왜, 저런 '도련님 ' 이 이런 곳에 오는 게 신기해? "
비아냥 거리는 말투에 화낼 새도 없이 데이다라가 황급히 자리를 떴고, 히단이 고개를 저으며 따라 나섰다. 여전히 애같아. 멍청하긴. 입으로 중얼 거리는 말을 데이다라는 다행히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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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공기가 제법 찼고, 무작정 뛰쳐나온 데이다라는 멍청한 자신을 한탄했다. 등신. 등신. 등신새끼. 술에 취한 알코올향이 코를 때리는 걸 가만히 느끼다가, 다시 한 번 등신. 토해내듯 뱉었다. 약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했다면 변기통도 아닌 그 자리에서 볼썽 사납게 토악질을 했을테다. 벌써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아 침을 모아 뱉었다.
당연스럽게 뒤를 따라오는 히단을 향해 데이다라가 소리쳤다. 네가 불렀다고? 진짜냐, 이 개새끼야. 분노를 가득담은 목소리에 히단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리가. 쟤가 내가 부른다고 나올리가 있겠어. 저 만의 볼 일이 있었겠지. 남 일처럼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일말의 감정도 없어 보였으나, 데이다라는 어쩐지 불안했다. 일주일 전에 기세 좋게 고백을 했고, 조용하고, 깔끔하게 종지부를 찍은 사이었다. 같은 사내놈이 사랑을 고백해왔음에도, 소문 하나 퍼지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선에서 끝이 났다. 사소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 볼 때부터, 그는 아마도 이 학교 사람이 아닌 듯 했다. 물론, 명문학교라는 명분만 보자면, 완벽했지만. 그는 전혀 방탕하지도, 쾌락을 좇지도, 사람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데이다라는 그런 사소리가 그 만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재수없고 완벽한 도련님' 이라고 히단은 매번 비아냥 댔다. 그럴때마다 데이다라는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주억거렸으나, 그리고, 그럼에도, 그런 그가 좋다. 라는 심플한 명제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의지를 배반해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좋아한다고 멋도 없이 튀어나온 날 것의 감정이 오롯이 사소리에게 전달 되었을 때에, 데이다라는 죽고싶다는 심정을 그제야 제대로 이해했다. 자신만이 인지하던 감정을 공유하게 됐다는 사실, 그리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지배했고,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도망쳤다. 그게 그로써는 종지부였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하필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병신같이 파티에서 알콜 조절을 하지 못 했던 데이다라는, 취기를 간신히 숨긴 채 기숙사에 기어들어갔는데 -늙은 사감은 눈이 좋지 않았다- 억수같이 비도 내리던 그 날 하필이면 복도에서 그를 만났고, 데이다라는 저만의 방법으로 기쁨을 표시했다. 그대로 입술을 비벼댔단 소리다. 데이다라는 끔찍히도 일어나자 마자 그 사실을 인지했고 아주 선명히, 그 볼품없는 입맞춤 이 후 그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진 걸 기억해냈다.
" 좆같아. "
" 술을 조심했어야지. "
씨발새끼. 화가 나는 걸 억지로 참으며 품을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사정을 앎에도 여전히 여유로운 히단을 보며 불을 붙이자 마자 히단이 킬킬대며 말을 붙였다.
" 이야기라도 해보지 그래. "
" 닥쳐, 곤란하게 하고 싶진 않아. 응 "
얼씨구, 히단이 고개를 저었고, 데이다라가 크게 한모금 빨아당기고는 뱉었다.
" 언제부터 그렇게 매너가 좋았는데? "
히단이 자연스레 손을 옮겨 담배를 빼앗아 입에 물고는 장난스레 물어대자마자, 작작해라. 짜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알코올이 범람하는지 코끝이 시렸다. 술을 너무 처마셨어. 기분도 더러워. 어쩐지 데이다라는 칭얼대고 싶어졌다.
히단은 가만히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한 데이다라를 내려다 보다가, 종국에는 웃었다. 우냐? 찬 바람이 볼을 때리는 날이었다. 날 선 바람이 어쩐지 존나게 서러워 데이다라는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싫어하면 어떡해. 결국엔 병신같은 목소리로 제 마음을 털어놓자, 종내 그런 데이다라에게 히단은 손을 뻗었다.
" 너도 해, 약이라도. "
용기라도 생기겠지. 차분하고 나른한 목소리에 어쩐지 데이다라는 화가 나.
" 싫어, 미친놈아. 내가 왜... ! "
가시가 돋친 목소리를 가로질러 닿은 손에 당겨졌다. 볼을 감싼 손이, 굉장히 차서 데이다라가 몸을 움츠리자 잡힌 턱에 힘이 더해졌다.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찰나에 들때 쯤에, 이내 닿은 입술에 다시 한 번 놀라 몸을 빼려 들자 뒷머리를 받치며 깊게 눌러오는 손길에 어쩐지, 질식할 것 같았다. 혀끝에 닿는 기묘한 맛의 약이 목끝을 스치는 것과 동시에 데이다라는 깊은 낭패감에 눈을 감았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손을 넣어 토하려 했으나 제지당하고 입이 틀어막혀진다. 어쩐지 서열싸움에서 밀린 승냥이가 된 기분이 돼버려, 올라오던 토기가 더욱 심해졌다. 어차피 약 기운이 돌려면 조금 기다려야 했으나, 그 때까지 인내심 있게 히단은 가만히 기다렸다. 눈이 몽롱해질 즈음에 히단은 인자하게 말을 붙였다.
" 그 날 사소리랑은 아무 일도 없었어. 멍청하긴."
데이다라는 늘어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 술에 꼴아서 제정신이 아니었나 본데, 똑똑히 기억해둬야지. "
그냥, 죽어버려야지. 담담히 다짐하며.
" 너한테 관심도 없는 사람한테 매달리지 말고."
술김에 착각했던 내 기억을 그러쥐고서는
" 아니, 기억하지마, 어차피 다시 잊어버리게 될테니. "
그 편이 더 낫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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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시님이 불러주신 12번.
12. "아니, 기억하지마. 어차피 다시 잊어버릴 거 잖아." I 도련님 I 그래봤자 애구만.
의도한 글과 매우엄청 달라진 것 같다만은 여하간 안쓰던 분위기 글이라 재미는 있었음
하하 쮸거라 데이다라여